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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에서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고?

들어가며

이미지 출처: CEL GULAPA
올해 3월, 메타버스 아바타를 이용하여 10대 여자아이를 상대로 ‘그루밍 성범죄’를 저지른 30대 남성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됐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던 피의자 A씨는 지난해 1월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에서 아바타를 활용하여 캐나다에서 학교에 다니던 B양(11)에게 접근했습니다. A씨는 B양의 나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나이를 비밀로 하고 놀자"면서 아바타 관련 아이템을 사줘 B양의 환심을 산 뒤 뽀뽀하는 모습이나 입 벌린 사진, 결혼 서약서 등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아바타를 이용한 성범죄자에 대한 수사로는 국내 첫 사례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구속영장은 기각되었습니다. 앞서 지난해 7월, 경찰은 해당 피의자를 대상으로 법무부를 통해 범죄인 인도 청구 역시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인도 불청구 결정을 내렸습니다. "전례가 없는 범죄로 신병을 구속, 인도하는 절차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메타버스의 발전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의 무대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채팅·음성·사진·영상 등을 이용한 성희롱, 아바타를 이용한 스토킹·유사 성행위, 그루밍 성폭력 등 형태도 다양합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2,698건이던 사이버 성폭력 범죄는 2021년 4,349건으로 61% 증가했습니다. 별도로 집계하진 않았지만, 이 중 상당수가 메타버스 내에서 발생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입니다. 이렇게 메타버스 환경에서의 성범죄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메타버스 내 성범죄를 ‘전례가 없는 범죄’로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메타버스 내 성범죄 피해 양상과 법적 처벌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메타버스에서 아바타 성범죄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지?

메타버스 내 성범죄는 다양한 양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내면 아이템을 준다고 했어요”
“메타버스에서 친해진 오빠가 잠깐 만나자고 했어요”
제 아바타를 계속 따라오다가 뒤로 가까이 다가왔어요”
“제 아바타에게 다가와 특정 자세를 취하게 하고 영상을 찍었어요”
메타버스 내 아바타 성폭력부터 ‘현실적’ 피해로 이어지는 그루밍 성폭력까지 다양합니다. 오늘은 메타버스 내에서 아바타에게 행해지는 성폭력에 국한하여 얘기해볼까 합니다. 아바타 성폭력에 대해 처음 듣는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과연 사람들은 자신의 아바타가 성적 행위를 강요당한다면 현실과 비슷한 수준의 성적 수치심을 느낄까요?”, “아바타에게 행해지는 것인데 처벌은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이미지출처: 오마이뉴스
한 취재진의 경험담을 통해 메타버스 내 아바타 성희롱 및 성폭력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취재진이 ‘제페토’에 ‘18세 여성’으로 설정하고 입장하자 20대 남성이 "우리 사귀자"고 말하며 성적인 농담과 함께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합니다. 똑같은 성별과 나이를 적용해 로블록스에 입장하자, 한 남성 아바타가 취재진의 아바타를 만지기 시작합니다. 특정 신체 부위를 언급하며 성적인 발언을 내뱉고, 취재진의 아바타 뒤로 움직이며 마치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소셜 VR 플랫폼 'VR CHAT'에는 성관계가 목적인 이들이 모이는 공간이 있었고, 서로를 만지며 수위 높은 대화를 일삼는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습니다.
한국재난정보학회 '메타버스 내 범죄 발생 유형과 확장성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메타버스 내 성범죄가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지만, 경험은 실제적이어서 정신적 피해가 실제와 같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메타버스에 몰입할수록 아바타와의 일체감은 높아지기 때문에 실제 자신이 해당 범죄를 당했다고 실감하는 것입니다. 앞선 사례만 보아도 해당 경험은 충분히 정신적 피해를 경험할 정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피해의 정도가 유사하다면 메타버스 내 성범죄 역시 현실에서의 성범죄와 유사한 무게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더군다나 현재 메타버스 플랫폼의 주 이용자는 10대인 만큼 대부분 피해자는 아동·청소년으로 추정됩니다. 국내 대표 메타버스 네이버 ‘제페토’의 경우 지난해 1월 기준으로 7~12세 이용자 비율이 전체의 50.4%에 달했으며, 13~18세 이용자 비율은 20.6%였습니다. 제페토보다 이용자가 훨씬 많은 외국의 로블록스도 7~12세 이용자가 전체의 49.4%, 13~18세 이용자가 12.9%를 차지했습니다. 따라서 메타버스 내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그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피해의 정도도 현실과 유사하고 주요 피해 층이 미성년자라면 가해자가 위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되지 않나요? 현행법을 기준으로 메타버스 내 아바타 성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과연 가해자는 실제 어떤 처벌을 받고 있을까요?

현행법상 메타버스 내 아바타 성범죄 가해자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이미지 출처: unsplash
범죄 발생 경우 원칙상 법적 대응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날로그 공간을 기반으로 한 현행법의 한계와 법인격이 부여되지 않는 아바타에 대한 성희롱 및 성폭력에 대한 처벌 공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구지방검찰청이 발표한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성폭력 범죄와 형사법적 규제’ 논문에 따르면 메타버스 내 성범죄는 청소년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성폭력처벌법 등을 통해 처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적용 범위가 한정적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형태의 아바타 성행위를 실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공연히 전시하는 행위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는 점과 아바타를 통한 행위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아바타는 메타버스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에서 이용자를 대신하는 또 하나의 인격체로 여겨지고, 사용자는 메타버스 내에서 깊은 몰입감을 느끼기 때문에 현실과 동일한 수준의 성적 수치심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러한 이용자의 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인물과 이용자의 아바타가 동일 인격체라는 것을 규정하는 법안이 없기에 현행법상 메타버스 내 아바타 사이의 추행은 실제 사람이 겪은 추행과 동일시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메타버스 내 아바타끼리 유사성행위를 하거나 성추행하는 장면을 녹화하더라도 성 착취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메타버스 내 성범죄 처벌 기준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과 통신매체 이용 음란 역시 현행법 그대로는 메타버스 내 성범죄에 적용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메타버스 내 아바타의 성범죄 처벌에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 요건은 실제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동과 청소년 대상의 메타버스 내 성범죄의 경우에는 상대 플레이어가 아동·청소년임을 인식하고 성적 대화를 지속해서 반복적으로 하거나 성교 등 성적 행위를 유도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아바타에 법인격이 부여되어 있지 않고 상대가 아바타에 가려져 있다 보니 ‘상대가 아동·청소년임을 인식하고 있음’을 입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또한 통신매체 이용 음란 역시 해당 법안에 명시된 '음란'의 개념이 굉장히 엄격하기에 현행법상 메타버스 내 성범죄에 적용이 어렵습니다.
이처럼 아바타 성범죄에 ‘현실 공간’에서 ‘사람’에게 가해지는 범죄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기엔 한계가 많습니다. 하지만 결국 메타버스에서 여러 몰입적 경험을 향유하는 주체 역시 ‘사람’인 만큼가상 공간’에서 ‘아바타’를 활용한 범죄가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사람’에게 명백한 피해를 남기는 범죄가 묵인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미성년자가 많이 분포하고 있는 메타버스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계속해서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범죄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진정 메타버스가 인터넷의 진화 단계로서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해당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수반됨과 동시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새로운 법률적 제재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발맞춰 지난해부터 국회에서 ‘메타버스 아바타 성범죄’를 잡겠다는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바타에 성기가 있다고 전제하는 등 황당한 내용들이 포함돼 실효성 논란이 일었습니다. 가상 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진 ‘보여주기식 법안’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아직 가상공간 내에서 해당 범죄가 성립하는 기준에 대한 인식 및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법안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란이 계속되며 논의가 길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새로운 법률적 제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인식적 측면에서 모두가 합의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새로운 법률이 마련되기까지 예방의 역할을 해줄 제도 마련이 절실합니다.

메타버스 내 아바타 성범죄를 막기 위한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미지 출처: meta
그렇다면 현재 메타버스 내 아바타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들이 활용되고 있을까요? 플랫폼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기술적 예방책은 효과적인 대응 방안 중 하나입니다. 예시로 게임사 QuiVR에서 개발한 '퍼스널 버블'(성추행과 같은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상대방에게 게임상에서 튕겨내 버리는 기능)과 메타버스 Meta Horizon World에서 개발한 '퍼스널 바운더리'(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아바타 간 일정 거리 두기 기능)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책은 이용자의 판단에 따라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피해를 신고할 수 있고 실질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체계 및 올바른 ‘성 메타인지’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적,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우리의 인식 변화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바타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메타버스 내에서 어떤 행위가 잘못된 것인지 인지하고 있다면 메타버스는 아바타 성범죄라는 그늘 없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가 눈부시게 발전하는 것 이면에 법률, 제도, 인식 면에서의 공백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잊지 않고 관심을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작성자: 윤가영)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