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목🐢 탈출을 위한 최고의👍 방법, XR

XR을 기존의 디지털 경험과 가장 뚜렷하게 구분짓는 단어는 단연 ‘몰입감(immersion)’일 것이다. XR은 컴퓨터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모니터라는 평면의 장벽을 없애버렸다. XR기기는 PC나 스마트폰과는 다르게 인간이 스스로를 모니터 뒤의 ‘사용자’라는 것을 인지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XR은 사용자가 현실 경험에서 느끼는 것 만큼의 몰입감을 XR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하여, 궁극적으로는사용자가 스스로를 그저 활동의 ‘행위자’로 인식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XR 기술은 넓은 시야각을 확보하고 지연속도를 줄이는 등의 여러가지 시도를 통해 사용자의 몰입감이 흐트러지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고, 현실과 가상의 개체가 경계없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에 힘입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XR 속에서 높은 수준의 현실감 있는 경험을 하고 있고, 참여자 커뮤니티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현실과 XR 속 메타버스가 거의 동등하게 공존하는 적극적인 메타버스가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XR경험에 높은 몰입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금의 마우스와 키보드 인터페이스로는 역부족이다. 인터페이스는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로, 그 형태는 사용자의 경험 수준과 한계를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XR이 기존의 디지털 경험과는 다른 수준의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인터페이스 또한 그에 맞게 발전했다는 뜻인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핸드트래킹’이다.

핸드트래킹은 손의 움직임과 제스처를 실시간 인식하여 사용자 입력으로 받아 처리하는 기술로, 몰입도 높은 메타버스 구현에 가장 적합한 인터페이스이다. 이 점은 메타버스로도 불리는 공간형 웹(Spatial Web)을 자유도 면에서 Web2.0와 비교해 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Web2.0에서는 사용자의 행동이 서비스 제공자에 의해 상당부분 제한된다. 혹자는 이에 대해, 정보의 이용자와 생산자 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쌍방향 소통이 강조되는 현재의 웹 이용 양상을 근거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1인 창작, 실시간 참여 미디어 등이 활성화되면서 개인이 자신의 창작물을 개방된 공간에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인터넷이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표면적으로는 정보 생산의 주체로 보이는 사용자가, 사실상 다른 누군가(해당 플랫폼의 운영자 집단)가 이미 만들어 놓은 판 위에서 허용된 범위 내의 제한적인 변화만을 주며 그것을 ‘사용’하는 축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SNS나 블로그에 자유롭게 글을 쓰는 행위도 결국 주어진 글쓰기 플랫폼 내에서 제공된 양식에 맞추어 텍스트만 바꿔 재생산하는 것에 속한다.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개인 창작물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특정 플랫폼에서의 가치가 다른 플랫폼에서의 가치와 연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산자는 반드시 플랫폼 차원의 개입을 통해야만 수익을 얻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중간 수수료 또한 발생한다. 결국 개별 창작자는 플랫폼 운영자 집단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고, 개인의 활동은 서비스 제공자가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뿐인 것이다.

사용자의 행위가 제한된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용자 입력이 마우스와 키보드, 터치스크린 만으로도 충분히 수용 가능한 것 같다. 주어진 몇 가지의 레이아웃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 안에 글을 쓰고 사진을 첨부하는 행위를 하는 데 굳이 손가락으로 창을 집어 움직이거나 시선을 추적하여 뷰어를 이동시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선을 모니터 방향으로 고정한 채 고개를 모니터 앞으로 쭉 빼고,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편하다.

그러나 공간형 웹이라고도 불리는 메타버스, 특히 XR기술이 도입된 메타버스 상에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간형 웹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와 같이 3차원 공간의 성격을 지니는 컴퓨팅 환경인데, 기존에 2차원 평면으로 존재했던 정보가 3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정보에 입체적 공간 정보가 추가된다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것은 컴퓨터와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2차원의 평면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이 디지털 환경에서 훨씬 더 넓은 범위의 활동을 하고싶도록 만들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공간형 웹, 즉 메타버스에 적합한 인터페이스는 일단 ‘맨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현실에서 세상과 상호작용 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터페이스가 90%이상이 손이기 때문이다. 공간형 웹에서 사용자는 생각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세계에서 농구를 하는 상황이라고 하면, 공을 던지는 버튼만 존재할 때 사용자는 적절한 타이밍에 공을 던지는 것에 집중하지 그 공을 다르게 조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손으로 공을 들고 던지도록 핸드트래킹 인터페이스가 사용된다면 사용자는 공을 던지기 이전에 튀기거나 굴리거나, 심지어는 터뜨리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가.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싶어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물론 소프트웨어 개발 시 그 모든 입력의 변수를 예측하여 그에 따라 공이 튀고, 굴러가고, 터지도록 설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사용자의 움직임 중 기계가 유의미한 움직임으로 분류하지 못하는 범위의 움직임도 많을 것이다. 손은 자유롭고 직관적인 인터랙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단점을 수반한다. 또한 맨손에는 움직임에 대한 피드백을 주기가 어렵다.

그러나 메타버스 상에서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확립되고, 그것이 핸드트래킹 인터페이스에도 적용되어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가 하나의 국제 표준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특정 소프트웨어에서의 입력과 그에 대한 반응(공 종류의 개체를 어느 정도 이상으로 찌그러뜨리면 조각나면서 터지는 소리가 재생된다 등)을 다른 소프트웨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면 사용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점점 더 많은 변수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상에서의 경험은 그에 적합한 수준의 인터페이스가 사용되었을 때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적합성’을 따져볼 때 주의할 점은 효율성 측면에서 ‘텍스트 코드 입력 < 마우스 클릭 < 터치스크린 < 손/눈/전신 트래킹’ 이라는 식의, 최신 기술이 항상 더 효율적인 컴퓨터 대 인간 소통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전신 트래킹(Full-body tracking)을 통해 몸의 움직임을 통째로 XR속으로 옮겨 놓을 수도 있지만, 인간이 손을 이용하여 할 수 있는 작업의 다양성과 다리/발을 이용하여 할 수 있는 작업의 다양성을 비교해 보면, 대부분 이동 목적에 국한되어있는 하체의 움직임을 굳이 트래킹 하여 사용자의 집중을 분산하면서 제한된 컴퓨팅 자원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메타버스 속 핸드트래킹 기술은 지금도 컴퓨터 비전의 발전에 힘입어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향후 공간형 웹의 시대에서는 핸드트래킹이 제 1의 인터페이스가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김보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