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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메타버스에 적응할 수 있을까? -심리학적, 뇌과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들어가며..
메타버스는 올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뇌과학자인 김대식 교수는 “미래 인류는 가상 세계에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은 꽤나 공상적인 주장처럼 들린다. 메타버스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이기에 그 미래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또는 그것을 향함에 있어 과도기는 어떤 식으로 거쳐야 할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 누구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볼 때이다. 메타버스는 ‘올까’? 인간은 그 메타버스에 정말 적응해서 살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메타버스가 구현된 미래 사회의 모습을 간단히 떠올려 보고, 앞서 제시한 질문을 오늘날까지 진행되어 온 심리학적 논의 및 뇌과학의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답해보려 한다. 이 글에서 사용할 ‘메타버스’라는 표현은 삶을 기록하는 라이프 로깅, 증강 현실과 가상 현실, 시뮬레이션의 요소를 모두 갖춘 가상 환경을 지칭한다.

메타버스와 함께하는 미래의 상상 가능한 두 가지 형태

메타버스가 도래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회 활동 등을 유지하면서 메타버스에서는 또 다른 삶을 병행하는 식으로 생활할까, 아니면 우리의 육신은 뒷전으로 제쳐두고 메타버스에서의 가상적인 생활에만 주력해 살아갈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각기 다른 두 가지 미래이다. 각각의 경우에 대해 사회상은 어떠할지, 우리는 메타버스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를 따져 보자.

1. 가상 세계의 삶과 현실 세계의 삶이 공존하는 형태

전자의 방식은 우리가 비교적 떠올리기 쉽다. 오늘날처럼 낮에는 일을 하고 일상적으로 생활하면서도, 자신이 원할 때는 메타버스에 접속해 가상 세계에서 생활하는 모습. 사실 이는 오늘날의 게임 혹은 소셜 미디어에 빠져 생활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몰입감에 있다.(황상민, 2000) 메타버스는 높은 전송 속도 및 정교한 햅틱 피드백 등을 바탕으로 한 가상세계이기에 사용자는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생생하게 메타버스에서 생활할 수 있다. 실증적인 연구는 진행돼야겠지만, 이러한 점에서 메타버스에서는 오늘날 게임과 같은 무질서함이 나타나지 않으리라 보는 이들도 있다. 즉, 메타버스의 몰입감은 단순히 더 높은 오락적 즐거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게임 등과는 질적인 차이까지 나타낼 수 있는 요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 동시에 온전히 메타버스에 몰두하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 두 가지 삶을 혼동할 여지도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에서 ‘리셋 증후군’으로 지칭하는 행동에서도 관찰할 수 있듯, 컴퓨터를 재부팅하거나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현실의 행동도 쉽게 되돌릴 수 있다고 믿고 잘못된 행동을 자각 없이 저지르는 경우들도 있다.(Lee, W. S., 2005) 이러한 가상과 현실의 혼동 문제는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필자도 ‘삼성 노트’ 어플리케이션의 자동완성 기능(삐뚤빼뚤한 선을 긋고 잠시 기다리면 선이 마법처럼 올곧게 펴지는 기능이다.)을 활용하다가 현실에서도 이것이 되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이에 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많이 뒤따라야 한다. 우선 ‘몰입감 있는 메타버스’가 도래한 ‘시점’에서는 이미 설명한 것처럼 게임과 같은 무질서함이 나타나지 않을 여지도 있다. 한편으로 오늘날의 연구는 대부분 가상 세계로의 몰입을 현실 세계의 관점에서만 파악하여 부정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이에 따라 계도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잦다.(홍성룡, 2014)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중립적인 시각에서의 추가적인 연구들이 더 필요하다. 메타버스와의 병존이 일어날 것 같은 미래라면, 각 세계의 자아가 정말 합치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뇌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진 못하다.

2. 가상 세계의 삶에 주력하는 형태

메타버스를 주창하는 이들의 상상은 조금 더 담대하다. 그들은 어쩌면 사람들이 현실의 삶보다 가상 세계의 삶에 더 큰 매력을 느껴, 인류가 이곳으로 새롭게 이동하리라 추측한다. 이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가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것이 정말 가능한지”이다. 얼핏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는 이러한 장면에 우리는 우선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설령 이동해야 한다 한들, 우리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여기서 신경 가소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해야겠다. 신경 가소성은 주위 환경에 맞도록 대뇌 피질의 기능과 형태가 변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백남종, 2008) 인류, 특히 인류의 뇌가 위대한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면, 우리가 살아온 방식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에도 쉬이 적응할 수 있다.
일례로 사용자에게 세상이 뒤집혀 보이는 안경을 주고 생활하도록 한 실험이 있었다. 물론 피실험자는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2주 뒤에는 자전거마저 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경을 벗자, 이번에는 세상이 그가 몇 십 년 살아온 방식대로 잘 보였음에도 비틀거렸다. (Pierre Sachse, 2017)
그러나 신경 가소성은 뇌가 구조화된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기란 어렵다. 예컨대 우리가 아무리 멀티 태스킹을 잘 하고 싶다 한들, 그건 뇌가 조직된 방식이 아닌 것 같다. 연구 결과는 우리 뇌가멀티태스킹 환경에서 주의력 등이 분산되고, 학습 능력이 저해됨을 보여준다. 즉, 인류의 오랜 역사의 진화의 산물인 ‘뇌가 조직된 방식’의 영역은 우리가 쉬이 뒤집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메타버스에 대해 우리의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서는 이것이 근본적으로 우리가 지각하는 방식을 바꾸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되기에 이러한 점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나오며..

메타버스가 일어날 미래라는 사실에 우선 동의한다면, 어떤 형태의 미래를 그리든 그 안에 나름의 기대되는 일면과 동시에 큰 문제점이 될 가능성도 함께 존재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려갈 세상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건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때이다. [최민우]
참조문헌
백남종. (2008). 신경조절과 뇌가소성. Brain & NeuroRehabilitation, 1(1), 12-19.
황상민 (2000), “사이버 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 서울:김영사.
홍성룡 (2014), 가상 현실 인터넷 게임의 부작용 대응 연구. 디지털콘텐츠학회지, 15(3), 405-412.
Lee, W. S. (2005). 사이버 스페이스의 공포. Digital Contents, (7), 12-13.
Pierre Sachse, Ursula Beermann, Markus Martini, Thomas Maran, Markus Domeier, Marco R. Furtner, “The world is upside down” – The Innsbruck Goggle Experiments of Theodor Erismann (1883–1961) and Ivo Kohler (1915–1985), Cortex, Volume 92, 2017, pp. 222-232.
Rosen, C. (2008). The myth of multitasking. The New Atlantis, (20), 105-110.ISO 690